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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김소리소식

새김소리에서 각종 소식, 이야기들을 게재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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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간인물 장운식캘리존새김소리 대표 인터뷰
작성자 새김소리 (ip:)
  • 작성일 2015-07-01 19: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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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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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산책 

현대와 전통의 콜라보

굴뚝 없는 공장-‘수제도장으로

문화콘텐츠 사업의 새로운 서막을 열다

 

취재 천서영 기자, 김지혜 기자 / 글 김지혜 기자

 

가장 세계적인 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다!

서예는 고루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나. 편견에 맞서 서예의 대중화를 꿈꾸고 또 실천에 옮긴 사람이 여기 있다. "프로는 불을 피우고 아마추어는 불을 쬔다"라는 신념으로 열렬하게 불을 피우는 사람. 그러면서도 본인은 지적 재산권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무단 승차하듯 그 불을 쬐러 몰려드는 이들을 향해 그저 내 갈 길만 가면 된다며 허허 웃는 대인배 장 대표. 6월의 무더움 속 인사동 거리보다 더욱 뜨거운 열정의 사람 장운식 대표를 주간인물이 만나보았다.

 

아름다운 글씨가 있는 구역,

캘리존새김소리

 

캘리존은 영문의 한글표기입니다. callizone(calligraphy + zone) 아름다운 글씨가 있는 구역이라는 의미죠.”

장 대표는 2007, 캘리존을 창업하자마자 캘리그라피를 시작했다. 200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붓글씨는 대개 전통 상품의 패키지나 올드한 상품에만 등장하는 것이었고 존재감은 매우 미미했다. 하지만 캘리그라피는 전통의 고질적인 무게감과 경직된 근육질 글씨 일색을 벗어난 자유분방함으로 색다른 가치를 만들어 냈다.

직선의 도시문화에 지친 현대인에게 수묵의 자연성이 배어있는 글씨는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주었고 빠른 속도로 대중에게 흡수되었습니다. 디자인 시장에서도 캘리그라피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가 잇따랐지요. 이러한 디자인계의 변화와 캘리그라피의 수요에 힘입어 캘리존도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캘리그라피와 더불어 캘리존에서 개발된 수제도장은 시장성이 커짐에 따라 새김소리라는 브랜드를 갖게 되었다. 현재는 후발주자 새김소리가 선발주자 캘리존보다 존재감이 더 커졌다.

 

장운식 대표만의 특별한 서예가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다

 

저는 대학강사이자 서예학원 선생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늘 저에게 서예는 밥 굶는 직업이라는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오기가 생기더군요. 기필코 서예로 돈을 벌고야 말겠다는. 경제력을 갖춘 남자와 결혼한 것보다 저를 만난 것이 아내의 기쁨이게 해주고 싶었고, 평생 농사지어 아들을 뒷바라지한다고 고생하신 부모님께도 자수성가해 효도하겠다는 다짐을 굳게 했습니다.”

그는 대학시절 컴퓨터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언젠간 이 물건을 요긴하게 쓰게 될 날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그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오피스 프로그램은 물론 웹디자인 관련 프로그램을 구해 독학으로 마스터하였고, 이런 과정은 훗날 캘리그라피 회사를 창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드림위버라는 프로그램으로 직접 쇼핑몰을 만들며 서예전공자로서 독특한 경력을 쌓아갔다.

이와 같은 이색 행보는 저의 운명을 특색 있게 만들었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길을 선택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아내와 부모님에게 품었던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게 되어 현재의 제 일에 만족합니다.”

장 대표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붓을 잡기 시작했다. 서예는 그에게 전생의 습관처럼 낯설지 않았다. 서예를 취미에 이어 전공분야로 선택하면서 본격적인 직업의 길로 들어서며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전통을 배우면서도 늘 새로움과 다름을 추구하는 성향은 유년기를 지배했던 속박에서 달아나고픈 반항심의 변이현상이었다.

 

서예와 현대의 조화,

서예와 디지털의 만남이 완성을 이루다

 

서예라고 해서 늘 선비처럼 도포 입고 한시를 읊조리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굳어지며 저는 활동 무대를 시골에서 인사동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서예와 현대의 조화, 서예와 디지털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비익조의 날개처럼 서로의 날개를 맞대어야만 진정 창공을 날 수 있는 하나의 완성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장 대표. 중국의 당송시대나 삼국시대로 돌아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닫힌 수문의 빗장을 풀고 현재를 굽이쳐 흘러야 진정한 서예라는 것이 서예에 대한 그의 가치관이다.

서예라는 아이템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겠다는 일념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인사동에 와서 무턱대고 길거리 좌판을 폈습니다. 당시 대학을 출강하며 나름 교수님이라는 칭호를 듣고 서예학원에서는 제자들에게 선생님 소리만 듣던 백면서생이 붓과 먹을 들고 사람들이 수없이 오고가는 노상에서 초라한 행색으로 티셔츠에 글씨를 써주며 호객하는 것은 여간한 용기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지요. 하지만 그 고집은 주요했습니다. 기존의 서예가들이 내려놓지 못하던 체면이라는 가식을 과감히 내려놓은 결과는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전각이라는 고전예술과 인장이라는 실용문화를 접목한 것은 실용을 넘어 감성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미적수요를 충족시키는 신선한 아이템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는 현재 쌈지길 매장과 인사동 매장을 함께 운영하며 놀라운 발전을 이뤘다. 수제도장이 사업성이 생기면서 적지 않은 문하생과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코앞에 가게를 내고 무단복제가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안타까움도 비일비재했다. 그는 지적 재산을 보호해 주는 장치가 미비한 데 아쉬움이 많지만 그간 상처를 호사다마라 여기고 앞으로도 자신의 길을 그저 묵묵히 걸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캘리그라피 수제도장은 같은 동양문화권인 중국이나 일본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선두에 서있는 만큼 해외시장 진출과 캘리존 새김소리를 대대손손 물려 줄 가업으로 꿈꾸는 장 대표. 그는 꿈꾼 것을 온 몸으로 살고 있다. 장 대표에게 도장은 신용과 믿음이라는 가치이다. 신용과 믿음을 발판으로 한국을 넘어 중국과 일본, 세계에까지 새김소리의 열정의 소리가 울려 퍼지길 <주간인물>이 응원한다.

 

 

첨부파일 캘리존장운식-1.jpg , 캘리존장운식-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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